둘째를 갖게 된 사역자
고향 마을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현지인 사역자와 헤어졌습니다. 급하게 마을로 돌아가야 했던 이유는 그의 아내가 둘째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9시간 걸리는 고향 마을까지 버스를 타고 가며 숨이 차도록 집으로 달려가고 있을 겁니다.
그와 헤어진 지 하루가 지나 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딸을 낳았다며 행복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첫째 아이와 8살 터울이니 그동안 기다리다가 받은 선물이 얼마나 기뻤을지 말하지 않아도 상상이 갔습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마음으로 빌었습니다.

코로나에 걸린 듯
그리고 나서 정확히 2주 후에 다시 연락을 받았습니다. 몸에서 열이 나고 관절마다 통증이 시작되어 혼자 격리되어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증상과 비슷했습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하루에도 수 백 명이나 드나드는 곳,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중국 식민지’라고 부르는 이곳이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할리 만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해 못할 성명만 발표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큰 걱정은 산모와 갓 태어난 아이였습니다. 만약에 그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 것이 맞다면 가족 모두에게 감염될 텐데 다행히도 그는 갓난아이와 하루 동안만 같이 지내고 도시로 나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식구가 늘었으니 가족을 먹여 살리고 사역도 제대로 하려면 더 일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한걸음에 도시로 나와 2주간 동안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도시에서 감염이 된 듯 증상이 생겼습니다.

혼자서 버텨야
병원을 찾아갔지만 검사는커녕 약도 주지 않았습니다. 검사기구나 약이 있을 리가 없지요. 이제는 스스로 바이러스와 싸워 이겨야만 합니다. 한편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시키지 않도록 스스로 방역을 해야만 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가 마을 교회들을 방문할 때 갖고 다니던 가방 안에 해열제와 항생제가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 둘은 수시로 연락하며 원격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넘어가면서 그의 병세는 급격하게 악화되었습니다. 이제는 전화로 대화가 안 되는 상황까지 갔습니다. 갖고 있던 해열제도 다 떨어져가고, 옆에는 그를 수발 들어줄 사람도 없습니다. 이러다가 연락마저 끊기면 그는 죽어가는 것도 모른 채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인근의 다른 사역자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추수철이라서 대부분의 사역자들은 밭에서 일을 해야 합니다. 누구 하나 가동할 인력이 없습니다. 그 와중에 정부는 이동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확진자가 한 명도 없다면서 이동금지 명령을 내리는 이유는 또 뭔지…. 그러나 정부의 부인에도 지역에서는 바이러스가 아주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동금지 명령은 그 상황을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을 올바른 결정입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죽어가는 사역자를 도우러 갈 길이 모두 막혔습니다.

기도뿐입니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전화가 끊어진지 5일째가 되던 날, 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무 기운도 없는 목소리였지만 살아있다는 소식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항생제를 너무 많이 복용한 부작용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영양공급을 제대로 못해 몸의 저항력이 급격히 떨어진 상태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해줄 수 있는 말은 조금만 더 버티라는 말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1주일이 지났습니다. 아직도 증상이 오락가락하면서 건강상태도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했습니다. 또 조금만 더 버티라는 말만 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또 다시 한 주가 지나고 그와 통화를 했지만 역시 조금만 더 버티라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야 했습니다. 의사도, 약도, 치료 도구들도 없는 그를 살릴 유일한 치료법은 조금 더 버티는 것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