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아팠다. 치솟는 열은 의사들이 통제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르내리고, 머리는 누군가 망치로 깨뜨리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고통을 느끼는 것도 하루쯤 지나서는 가물가물해졌다. 의식이 왔다갔다하면서 아픈지도 모른채 침대에 눞혀져 있었다. 간간이 흐릿하게 정신이 들면 침대옆에 세워진 혈압, 맥박같은 몸상태를 측정하는 기계의 삑삑거리는 경고음 소리와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간호사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깊은 무의식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모처럼 추수감사절 연휴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즐기는 그 시간에 나는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그렇게 죽음의 고통과 싸우고 있었다. 말라리아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세상의 고통을 다 잊을 수 있는 천국의 문턱 앞에서 한발만 들여 놓으면 되는데 의료진들은 그 한걸음을 막으려고 결사적인 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전에도 말라리아에 걸렸었지만 이렇게 힘들진 않았다. 이번에는 미적거리다가 늦게 병원에 도착하고 나이도 들어서인지 정말 힘들게 바이러스와 싸워야 했다. 며칠간의 치열한 싸움끝에 의료진들은 말라리아 바이러스를 모두 죽였으니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통보를 내렸다.

정말 감사했다. 그렇게 헌신적인 의료진들과 병원의 다양한 기계들, 의료 기술등이 아니었으면 나는 벌써 말라리아에게 간이 다 파괴되고, 적혈구가 모두 터져서 생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연휴를 반납하고 달려와 준 의료진들이 고맙고 기도해준 이들이 참으로 고마왔다.

그러나 고마운 마음만 드는게 아니었다. 아프리카에서 사역할 때 많은 이들을 만났다. 기도해 달라고 머리를 들이밀던 이들도 많았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면 대부분이 말라리아에 걸렸다고 대답했다. 일년에 100만명에서 300만명이 죽는 병이니 말라리아에 걸린 사람은 주변에 흔하디 흔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해 줬다. 기도하며 이마에 손을 얹었을때 이미 바이러스 활동이 시작되어 고열이 손으로 느껴지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기도해 주는 것이 내가 할 수있는 도움의 전부였다. 성령께서 역사하시길 기대하며 기도했지만 나눠줄 약도 없었고, 데리고 갈 병원도 없었다.

그렇게 만났던 사람들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나는 똑같은 말라리아에 걸렸어도 병원의 도움으로 이렇게 다 나아서 퇴원을 하는데 그 사람들은 약도 없이 그냥 죽어야만 하는 것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열에 시달릴때 간호사들이 얼음 시트와 각종 기계를 써가며 열을 내리고, 먹지 못해도 영양주사를 놓으며 나를 살려 냈는데 저 사람들은 얼음은 커녕 전기도 없지 않은가… 약도 없어서 고열에,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간세포가 다 파괴되어 더이상 몸이 견뎌내지 못하면 숨을 거두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당신들은 그 땅에 그렇게 태어났으니 어쩔수 없잖아요?’라고 말하는게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됐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내가 살아났다는 것 자체가 돌덩이처럼 나를 힘들게 했다. 이번에 다시 가면 기도해 주었던 사람들중에 몇 명이나 살아 있을까? 그들의 자식들이 죽고, 부모가 죽고, 사랑하는 이웃들이 죽었는데 난 살아서 이렇게 돌아왔다고 말할 수는 있을까? 생존이 빚이 되어 내게 던져지던 순간이었다. 그 빚을 갚아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나만 살지말고 다같이 살릴 길을 찾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말라리아 예방 프로젝트이다. UN같은 대규모 국제단체가 나서도 해결되지 않는 이 문제를 나같은 사람이 나선다고 해결될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하는데까지는 해보려고 한다. 먼저 마을마다 교회를 개척하고 교회가 주민들을 설득하고 교육하여 말라리아가 확산되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말라리아는 모기가 전염시키기 때문에 모기에 물리지 않는게 기본이면서 예방의 첫걸음이다. 그래서 교회가 모기장을 가정마다 나누어 주는 것도 지원하려고 한다. 또 주거지가 지저분하고 하수구 시설이 없어 모기가 증식하는데는 제일 좋은 환경이다. 그런 마을을 개선하는 역할도 지역 교회가 나서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한 지는 10년도 넘었다. 한동안 시도하려고 발버둥도 쳤지만 생각보다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포기하고 말았다. 그 영혼들은 우리의 마음에서 너무 멀리 있었다. 말라리아로 백만명 이상이 매년 죽는 것보다 코끼리 한마리 죽는 것이 뉴스가 되는 세상이었니까…

그러나 주님이 떠나시며 우리에게 맡기고 가신 영혼들이다. 주님이 가셔야 할 마을이지만 우리에게 남겨두고 가셨다. 우리들이 충분히 책임질 것이라고 믿으셨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힘들어도 해야할 사명이라 믿고 그 길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