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을로 가는길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나 나올것 같은 낡은 버스를 타고 산을 올라 갑니다. 이 길을 갈 수 있는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운행합니다.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길입니다. 얼마나 꼬불꼬불한지 현지인들은 이길을 ‘1천번 굽이길’이라고 부른답니다. 이렇게 낡은 차로, 이토록 고난도의 협곡을 올라간다는게 기적같이 느껴집니다.
옆에 앉아 졸고있는 현지인 사역자를 깨워 왜 정부는 이런 길을 보수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길을 가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랍니다. 저 산너머 마을로 갈 이유도 없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 편으로 나올 이유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 산너머에 사는 사람들은 세상의 변화를 따라올 엄두도 못내고 고립된 삶을 살아 갑니다.
버스가 산 중턱 즈음을 넘어가고 있을 때 버스안 여기저기에서 멀미하는 사람들이 늘어 났습니다. 차량 이용을 평생 몇번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니 이런 가파른 굽이길에서는 차멀미를 피해갈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토하는 사람들을 보며 옆사람도 토하고 앞사람도 토하고… 버스안은 온통 토하는 사람들로 경쟁을 합니다. 그래도 버스는 세울 수가 없답니다. 이런 비탈길에서 세우면 가속도를 다시 얻을 수가 없어 버스는 올라갈 수가 없기 때문이랍니다.
고물이 된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과 버스안 승객들이 토하며 내뿜는 온갖 비릿한 냄새, 그리고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흙먼지로 숨이 가쁠 정도입니다. 그렇게 꼬박 14시간, 갈아탄 버스까지 합치면 29시간을 달려 집이 달랑 몇채 보이는 구릉지대에 도착했습니다. 몇사람 살것 같지도 않은데 이곳이 종착지였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니 어떻게든 잘 곳을 찾아야 합니다. 버스를 함께 타고온 사람들은 모두 손사래를 치며 자기 길을 갑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산을 넘어가야 만나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길에서 만난 한사람을 따라 갔습니다. 다행히 걸어서 30분 거리에 집이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하룻밤을 쉴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씻는 것보다는 쉬는게 더 급했습니다. 몸무게가 열배쯤 불어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있어 또 일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공안이 찾아 왔습니다. 여권을 조사하고 여행 목적을 확인하고 가방을 뒤졌습니다. 이런 지역에 외지인이 올 이유도 없고 관광객은 더더욱 없는 마을에 우리가 등장했으니 바로 보고가 된듯 합니다. 공안은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도 우리 둘을 공안 처소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에서 조사를 받으며, 졸기도 하며 밤을 보냈습니다. 공산국가에서 일상적으로 당하는 일입니다.
공안은 새벽녘이 되자 우리를 풀어 주었습니다. 마을 당 위원들이 겸임을 하는 공안이다 보니 그들도 밭에 나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어쩔수 없었나 봅니다. 가져온 마른 식량과 소금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이제는 고산을 걸어서 넘어야 합니다. 길도 없고 가파른 산길을 현지인 사역자와 걸어 올라 갑니다. 말하는 것도 에너지가 소모되니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숨쉬는 것만 빼고는 모든 에너지를 걷는데만 써야 했습니다. 그래도 발은 퉁퉁 부어 오르고 온몸은 기름틀에 눌리는 것처럼 고통스런 시간이었습니다.
꼬박 11시간을 걸었습니다. 산을 몇개 넘었는지 모릅니다. 석양이 보이고 어둠이 산에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건너편 산비탈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이 보였습니다. 밥짓는 마을입니다. 금방 손에 닿을 것 같았는데 그 마을을 찾아 가는데도 5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밤늦게 찾아온 외지인 방문객을 마을 원로가 맞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덮고 자던 이불을 내주며 지친 몸을 쉴 수있게 해 주었습니다. 전기없는 방안에 달빛이 새어 들어와 그의 얼굴을 비췄습니다. 그렇게 보고싶고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입니다. 성경도 없고 복음한번 들어본 적도 없는 그 사람들입니다. 한번만이라도 복음전할 기회를 달라고 그렇게 기도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엊그제 만났던 분들처럼 반가왔습니다. 여기가 거기였습니다. 그렇게 기도했던 그 땅, 미전도종족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