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얼굴은 웃상이다.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얼굴만 보면 세상 힘든일 전혀 겪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세상에서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산다고 얼굴로 광고하고 다니는 사람같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스마일 목사님’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농사짓느라 까맣게 그을린 것만 빼면 채팅할때 사용하는 웃는 이모티콘과 꼭 닮았다.

그러나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의 얼굴과 삶의 궤적이 어쩌면 이렇게도 다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농촌에서 세상물정 모르고 일만하던 그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그 순간부터 그의 인생은 가시밭길이었다. 예수믿는 것을 거악이라고 주장하던 친척에 의해 경찰에 체포되어 1년 6개월동안 감옥에 가야했다. 온전한 정신으로 버티기 힘들다는 그 감옥에서 시간을 다 채우고 나온 그는 얼마후에 또다시 체포되었다. 이웃 마을에 친구를 만나려고 방문했다가 말도 안되는 죄명을 걸어 또다시 1년 6개월 형을 받았다.

두번째 갇혔던 감옥에서 갓 나왔을 때 그를 만났다. 힘들고 치욕스런 시간이었을 터인데 그는 그저 웃고 있었다. 그동안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런 그의 미소를 보는 것이 참 슬펐다. 그가 불쌍해서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내가 불쌍해서 슬펐던 것이었다.

그는 기회만 있으면 마을을 찾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산을 넘기도 하고 칠흙같이 어두운 동굴을 지나가야 만나는 마을에도 찾아가 복음을 전했다. 예수믿는 사람이 생기면 몇명이 모여도 그 마을에 교회를 시작했다. 작은 집에서 몇사람 옹기종기 모여 예배를 드리는 그런 교회이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는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사역했다. 농사철이 시작되면 눈코뜰새없이 바쁘다. 그러나 전도하는 일을 쉬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그가 감옥에 들어가면 식구들과 교회를 먹여 살리는 것은 그의 아내 몫이다. 아내는 남편이 해오던 농사일 뿐만 아니라 서툰 교회 사역도 맡아서 해야했다. 그렇게 뼈 빠지게 일만했던 아내는 그가 두번째 감옥에서 나왔을 때 쓰러지고 말았다. 숨쉬는 것도 힘들 정도로 몸은 쇠약해졌고 그렇다고 도시에 있는 병원을 찾아가 치료할 여력도 전혀 없었다. 주일 예배때 그의 교회를 방문하면 아픈 아내는 작은 방 한쪽 구석에 시체처럼 눕혀져 있고 몇안되는 성도들은 오늘도 살아계신 주님의 기적을 기대하며 뜨겁게 기도한다.

그렇게 사역하던 스마일 목사님이 얼마전에 또다시 체포되어 감옥에 갔다. 소천한 성도 가정의 장례식을 인도하러 갔다가 대중앞에서 기도를 했다고 그것을 꼬투리 잡아 체포했다고 한다. 말도 안되는 그들의 처사에 화부터 났다.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이런 비민주적인 나라가 어디있나’ 원망도 해보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괴롭히는 위정자들과 주민에 대한 분노가 참을 수 없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선교를 한다는 것에 회의감도 들고 배신감도 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선교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말할수 없는 회개가 쏟아져 나왔다. 언젠가 스마일 목사님에게 감옥에 가둔 경찰이나 주민들이 원망스럽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어려움이나마 있으니까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얘기할 수가 있지 그마저도 없으면 뭘 갖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남들한테 얘기하나요?’ 그리고는 해맑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정말 고난중에도 즐거워한다는 말씀이 어떤 모습인지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다. 예수를 믿으면 고난을 더불어 받는다는 말씀을 문자대로 믿었고, 지구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그런 비슷한 고난을 겪으며 산다고 믿고 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겨울이 다가온다. 열악한 감옥 환경에서 그는 이 겨울도 견뎌내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목숨을 담보할 수 없는 이 어두운 터널같은 시기를 어찌 견뎌낼지 마음이 아파온다. 그러나 그는 분명 냉냉한 시멘트 바닥에 앉아 예수님의 모습에 한발자욱 다가 갔다고 좋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스마일을 생각하는 나는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