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이곳 사람들은 에볼라가 어떤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마을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갈때가 되서야 이 바이러스는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끔직한 무엇이라고만 상상했습니다. 대부분의 전염병이 모기를 통해 전염이 됐지만 이것은 사람의 땀이나 침같은 체액으로 전파가 됐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모이는 것은 무엇이든 금지했습니다. 전기도 없는 마을이기에 저녁만 되면 마을 공터에 모여서 환담을 나누던 모습도, 바람빠진 축구공을 놓고 벌이던 아이들의 축구경기도 마을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1주일마다 모이던 시장도 폐쇄가 됐고 교회도 더이상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사람들은 살기위해 혼자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시장이 폐쇄되니 생활에 꼭 필요했던 필수품도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정글 속에 산을 일구어 만들어 놓은 밭에도 나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박쥐에게서 시작됐다거니 원숭이에게서 시작한 것이라는 소문때문에 정부는 주민들이 숲속에 들어가는 것을 차단했습니다.
이렇게 생활과 직결된 활동이 전면 중단되니 사람들은 바이러스보다 먹고살 걱정을 먼저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서 도움을 주지도 않았습니다. 교회는 활동이 금지되었으니 목회자가 어디에 있는지, 성도들은 어디에서 살아 남았는지 파악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에볼라 바이러스로 가족을 잃은 가정은 하나둘씩 점점 더 늘어만 갔습니다. 장성한 자녀가 있는 가정은 어떻게든 살아보라고 하겠지만 어린 자녀를 두고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난 집은 이웃들이 나몰라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시간이 4년가까이 흘렀습니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모두 박멸되었다고 선포가 되었고 여러가지 금지사항들도 다 풀렸지만 에볼라가 할퀴고 간 흔적은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하루하루 먹고 살아갈 방도를 찾아야 했고 하루 한끼 식사가 생활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우리 식구만 먹고 살면 되었지만 지금은 책임져야 할 아이들과 이웃들이 두배이상 많아졌습니다.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치진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 지친 마음은 기다리는 법을 다 잃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이번에 마을들을 방문하면서 가난하고 가장 어려운 가정들 중심으로 염소를 나누어 주었는데 충분하게 나누어주지 못하다보니 챙기지 못한 가정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분들에게는 다음에 꼭 기억하고 도와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의 주민들은 그런 약속을 믿지못했습니다.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온 사람들에게 ‘다음에’라는 말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올게’하는 약속도 믿지는 못합니다. 이분들에게 가장 어려운 때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입니다. 한집 건너 한집의 식구가 에볼라 바이러스에 걸려 시체가 되어 나가는 것을 두눈으로 봐야만 했습니다. 먹을 양식은 다 떨어지고, 할수 있는 일은 없고 어디에 대고 도와 달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분들에게는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암흑과 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아무도 찾아와서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국제 단체나 정부가 이 지역을 출입금지구역으로 설정해서 외부인 진입을 차단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누구도 들어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와서 도와줄 수가 있었는데 모두가 자기들을 외면했다고 생각합니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박멸된 지금은 자유롭게 여행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이곳은 사람들에게 기피지역처럼 인식이 되어 있어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현지인 사역자들은 염소를 나누어주며 주문을 외우듯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만나지 못했고 알지 못하지만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정말 걱정하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고요. 우리를 그렇게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사랑의 표시로 이 염소들을 보내와서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구를 얻게된 것이라고요. 누군가 자신들을 걱정해 주고 기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 주민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는 모양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을 죄인 취급하고 이곳은 누구도 들어오지 않는 죽음의 땅이라고 여길줄 았았는데 자기를 진정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정말 힘이 되는가 봅니다.
마을들을 다 돌아서 나오는데 아이의 사진을 찍어달라며 엄마가 아이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만약에 에볼라 바이러스가 마을에 다시 돌아와 혹시라도 아이를 잃게되어도 사진이 있으니 기억할 수 있을거라며 엄마는 나를 보면서 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