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나는 또래 아이들 중에서 가장 활달해 보였습니다. 전형적인 장난꾸러기, 수다쟁이 어린아이입니다. 아이들과 놀때도 여성스럽게 놀지 않습니다. 남자 아이들과 몸을 부딪히며 힘으로 밀어 부치는 그런 아이입니다. 아프리카 오지 마을에서 여장부로 커갈 소지가 다분했습니다.
그런 성격이 태어나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지금의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엘리나와 함께 사는 식구들은 아이들 10명, 할머니, 양어머니 포함해서 모두 12명입니다. 모두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아닙니다. 세가정의 아이들이 같이 모여 사는 겁니다. 부모를 모두 잃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집에서 이 모든 식구들이 같이 사는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양어머니가 학교에서 일하는 월급이 유일한 수입입니다. 그래서 주말이면 10명의 아이들이 모두 숲속에 있는 밭에 가서 일을 합니다. 최소한의 양식을 거기에서 재배하는 것입니다.
좁은 방안에 열명의 아이들이 생활을 하니 싸움이 끊이질 않습니다. 가장 자주 싸우는 원인은 창문옆 자리를 누구 차지하느냐 입니다. 창문옆에는 햇볕이 들어와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공부도 하고 숙제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밤이 되면 창문 너머로 보이는 별을 보며 엄마, 아빠도 생각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엘리나의 부모도 지금부터 3년전, 한창 에볼라 바이러스가 이곳을 휩쓸고 지나갈 때 잃었습니다. 에볼라가 시작되고 나서 마을 사람들은 말라리아와 별반 다르지 않은 바이러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훨씬 강력했습니다. 치료약도 개발되지 않은 죽음의 병이었습니다. 그래서 걸리기만 하면 다 죽었습니다.
마을에는 빈집이 늘어갔고 흉흉한 분위기가 이곳을 점령했습니다. 학교도 폐쇄가 됐고 시장도 모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땀을 통해서도 전염이 된다고 알려져서 사람들이 모이거나 접촉하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했습니다. 그래서 길거리에서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 보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옆집 아주머니의 비명 소리가 집밖에서 들렸습니다. 엘리나는 밭에 가져갈 도구들을 챙기느라 부엌에 있다가 비명 소리를 듣고 마당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마당에는 엄마가 쓰러져 있고 옆집 아주머니가 몇걸음 떨어져 발을 동동 구르며 서 있었습니다. 엘리나는 엄마를 부르며 달려 갔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엘리나의 손목을 잡아 끌며 엄마를 만지지 못하게 했습니다. 엄마가 쓰러졌는데 아주머니가 왜 방해를 하냐며 울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끝까지 엘리나를 붙잡고 놔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아빠가 달려 왔습니다. 아빠는 마당에 들어오자 마자 쓰러진 엄마를 일으켜 세우려 했습니다. 엄마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지만 아빠는 어떻게해서든 방으로 안고 들어가 안정을 취하게 하려고 한듯 합니다. 바로그때 UN에서 파견된 의료팀들이 도착했습니다. 동네의 리더들과 이웃들도 같이 따라 들어왔습니다. 엘리나 집은 순식간에 동네 사람들로 북적였고 의료팀은 분무기로 하얀 가루를 열심히 뿌려댔습니다.
아빠와 그 의료팀 직원들이 몇마디 대화를 하더니 엄마를 들것에 실어서 데려 갔습니다. 그리고 아빠도 같이 데려 갔습니다. 아빠는 엘리나를 돌아보며 큰 미소만 짓고는 아무말없이 돌아서서 갔습니다. 아빠가 어디를 가면서 그렇게 손도 한번 잡아주지 않고 떠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모든게 이상하고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엘리나는 엄마, 아빠를 따라 가겠다고 떼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 직원들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떠난 엄마와 아빠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마을 어른이 무슨 종이를 한장 갖다 주고는 그게 엄마, 아빠라고 했습니다. 엘리나는 엄마, 아빠가 돌아오지 않을거라는 말이 거짓말이라고 했습니다. 양어머니가 와서 동생들과 함께 자기를 그 집으로 데리고 갔을때 엄마, 아빠가 그 죽음의 병이라는 에볼라로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엘리나는 밤마다 흐느껴 우는 동생들 때문에 항상 씩씩한 모습을 보여야 했습니다. 엄마, 아빠를 기다리는 동생들이 너무 슬프지 않도록 더 수다를 떨고, 더 활달하고, 더 씩씩해져야 한겁니다. 세계보건기구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이 지역에서 완전히 없어졌다고 발표를 하고 축제를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나는 아직도 그 에볼라의 후유증을 앓고 있고 그것이 모두 사라지는 날이 꼭 오기만을 기도하고 있습니다.